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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연재상자/어떤 존재들

어떤 존재들 1 '제갈량' - 오렌지노 새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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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들 1 - 제갈량


 정체가 탄로나기 전에 이 곳을 떠나리라.

 이 곳은 전장임을 무색하게 해주는 적막한 작은 방. 나는 이제 이 곳에서의 할 일을 다 해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어떻게 돌아갈지를 구상해야 할 때이다. 작은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저 등잔불은 저리도 쓸쓸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낮에 내가 보낸 사자에게 들은 말 때문이었다. 

 "승상, 사마의는 아낙네의 옷가지를 보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더냐?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고?"
 "제게 질문을 했는데... 승상께서 언제 잠자리에 드시는 지, 집무를 얼마나 보시는 지 등을 물어보길래 그대로 일러주었습니다."
 "괜한 짓을 하였구나. 그래, 반응은 어떻더냐?"
 "송구하옵니다. 사마의는 승상께서도 멀지 않은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눈치없는 사자와의 대화 속에 이미 몇몇 장수들의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내가 아니라도 그 사자를 다시 적진에 보내는 장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듣고보니 사마의덕에 어쩌면 내가 돌아갈 수 있는 타이밍을 잡은 것이니 그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가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고, 그것이 어떤 '사고'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약간의 후회가 찾아왔다. 후회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건만, 너무 많은 것을 담당해왔던 것은 욕심이 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사람들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 잠들지 못하는 것은 아무 상관 없지만, 주위의 걱정을 키운 꼴이 되고야 말았다. 

 이튿날 강유를 불러 말했다.

 "내 명이 곧 다할 것 같소. 슬슬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승상, 그게 무슨말씀이십니까?"
 "어젯밤 천문을 살펴보니 아무리 보아도 내 명이 다해가는 것을 어쩌지 못할 것 같네."
 "천문은 천문일 뿐, 힘을 잃지 마십시오."

 보통 사람이면 천문을 핑계로 말했을 때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거나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유는 정말 남다른 사람이었다. 천문보다는 자신, 그리고 자신이 믿는 사람을 더 신뢰했던 것이다. 나는 이 자가 세상을 바꿀 것임에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을 거역할 수는 없을 것이야."
 "그렇다면 하늘에 빌어 목숨을 더 받으심이 마땅하지 않으십니까, 승상."
 
 그래. 이렇게 된 거 크게 쇼를 하고 마무리 지어야 겠다. 강유를 잘만 이용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방법을 써야한단 말인가... 선주(유비)의 뜻을 받을기 위함이라면 안 써볼 이유도 없겠네. 강유 그대가 준비해줄 수 있겠는가?"
 "네. 분부만 하십시오."
 "그렇다면 건장한 장수 마흔아홉명에게 검은 옷을 입하고 장막을 지키게 하라. 내가 북두칠성께 목숨을 비는 일주일동안 가장 큰 등잔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열두해 목숨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도 없는 행위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내 장수들에게는 이만큼 긴장되는 광경이 없을 것이다. 

 6일이 지났을까, 나도 이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저 불이 꺼질 사고가 생길 것이라 믿었건만, 이렇게 되면 또 다시 돌아갈 기회를 놓치고 만다. 애초에 이 방법을 쓰지 말았어야 했던 것인가... 아무도 모르게 저 불을 끈다면? 아무도 못 볼거라는 장담을 하지 못 할 것이다. 오늘 안에 반드시 저 불이 꺼저야만 한다. 병사들로 하여금 이 장막을 지키라고는 하였지만, 장수들은 이 곳을 드나들 수 있는데 뭣들 하는 것인가. 

 "승상! 위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위연의 목소리다. 그래. 위연이 걸리는 것이 가장 그럴싸하다. 이미 주위를 미끄럽게 만들었기에, 남이 들어오면 넘어지기가 쉽게 되어있었다. 네가 넘어져야한다.

 '꽈당'

 계획대로 되었다. 등잔불이 꺼지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위연때문에 내 수명을 늘리지 못 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난 그자리에서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근처에 있던 강유가 이 사실을 알고 위연을 목 베려 하였다. 어서 말려야 한다.

 "그대로 놔두게. 이 것이 하늘의 뜻인 걸 어쩌겠는가."

 이제 내가 언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상황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려면 평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말했듯 위연이 반역을 할 것이고, 그 때 사람을 시켜 위연을 죽도록 하면 어느정도 내가 이뤄놓은 체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룰 사람은 강유가 될 것이다.

 유언장을 쓰듯 장수들을 불러 내가 죽은 뒤의 일을 일러놓고, 강유를 따로 불렀다.

 "내 자네를 믿네. 그동안 병법과 아이디어들을 적어놓은 서적이 있으나 자네가 아니면 가치도 없는 책일 것이야. 이 병법서를 보고 촉의 미래를 맡아주게."
 "...알겠습니다. 승상."

 그 밖에 여러 상황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반드시 해 두고 가야 할 것이 남았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촉나라이기에 사마의를 견제해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천문에 의지하는 사마의의 꾀를 이용하여, 내가 없는 촉도 무섭다는 것을 암시해두어야 했다. 그 때 후주(유선. 유비의 아들)가 보낸 이복이 찾아왔다.

 "어찌 이리 되셨단 말씀이십니까..."
 "사람의 일을 어찌 짐작한단 말이요."
 "천자께서는 승상의 후계자를 물어보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장완을 쓰시오."
 "그 다음으로는 어떻겠습니까?"
 "비의가 좋을것이오."
 "그 다음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어차피 큰 일은 강유가 잘 이뤄줄 것이니 그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생각한 나는 생을 마감한다. 사마의가 나의 별이라 생각하고 보고있던 그 별의 밝기를 약하게 하다가 이내 안 보이게 하였다. 이에 사마의가 몸소 대군을 이끌고 촉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마의군이 우리 진영 깊숙히 들어왔을 때, 미리 내가 일러둔 대로 내 형상의 목각인형을 태운 수레가 멀리서 등장했고, 사마의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그를 따르던 장수와 병사들은 도망가다가 지들끼리 밟혀죽기까지 하였다. 이제 내가 없어도 촉을 우습게 보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어쨋든 제갈량은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제가 10년 전에 구상했던 장편소설을 이제서야 재구상하여 연재하게 된 것입니다.
연재 중 특정 집단에서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소재로 전개되나, 있을법 한 허구일 뿐이니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그림, 음악 : 오렌지노 (이진호)

이 글은 멘사 글쓰기 프로젝트 몽당(Fire)에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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