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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연재상자/단편선

[단편소설] 사랑받아야 사는 여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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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아야 사는 여자

세련된 란제리 차림의 수애가 거울을 바라본다. 혼자 살기엔 약간 넓은 듯한 그녀의 집. 알아주는 기업의 잘 나가는 마케터인 그녀는 적지 않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옷과 화장품에 투자하기 일쑤다. 전신거울 앞에 엄청난 양의 화장품이 진열되어있다. 분명 일주일에 한 번도 쓰지 않은 화장품도 있을것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감상한 수애가 거울 옆의 수정구슬을 바라본다. 신비한 보라빛을 띄는 수정구슬이 그녀의 미모만큼이나 빛나고 있다. 수애는 뭔가 아쉬운듯한 표정으로 구슬을 쓰다듬는다.

사실 그 수정구슬은 그녀의 생명력 그 자체이다. 이 수정구슬은 그녀가 받는 사랑이 늘어날수록 강한 빛을 내뿜는다. 하지만 미움을 받는다면 그 빛의 힘이 약해진다.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수애는 이 수정구슬과 생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래서 자신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으로, 그녀는 뭇 남성들을 첫 눈에 반하기 쉬운 외모를 갖게되었다.



연예인 제의도 많이 받았다. 사람이 많은 곳을 거닐다보면 가끔씩 연예인 매니저라는 사람이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수애는 연예인이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한 때는 연예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유 없는 안티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치감치 포기한 것이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면 즉각 건강 악화로 드러났다. 그래서 어떻게든 미움을 적게 받고 사랑을 많이 받아야 그녀의 생명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 지이이잉

수애의 핸드폰이 울린다. 친구 인비의 전화이다.

- 어 인비야.
- 뭐해?
- 그냥 있지 뭐.
- 수애야, 너 현세오빠랑 헤어진지 얼마나 되었지?
- 글쎄, 2주정도 되었나?
- 역시 시크하네. 소개팅할래? 나쁜남자 어때?
- 나쁜남자?
- 그래. 넌 남자 없이 보낸 기간이 한달을 넘긴적이 없잖아. 이번엔 나쁜남자도 한 번 만나봐야지.
- 나쁘기만 해?
- 매력이 있어. 그동안 울린 여자가 한 둘이 아니... 아, 그것보다 차가움 속에 인자함이 있는 능력남이야. 음...

인비의 목소리가 잠시 흐려졌다. 소개시켜준다는 남자가, 여자를 여럿 울렸단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말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인비는 소개팅은 물건너갔다고 생각하고 화제를 돌리려고 한다. 그런데 수애의 대답이 빨랐다.

- 할게.
- 응? 한다고?
- 응.
- 아, 그래. 수애야. 생각 잘 했어. 이번주말 비워놔.
- 응 알았어.
- 너 그런데 마사지샵 추천해준다며? 언제 데려가줄거야?
- 소개팅 전에 같이 가자.

가벼운 대화들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인비는 수애와 친한 척을 했지만 사실 수애를 질투하고있었고, 소개팅을 시켜준다는 나쁜남자는 인비가 최근에 알게된 바람둥이였다. 남자가 늘 주위에 들끓는 수애에게 이 바람둥이를 소개하여 상처를 주고싶었을 뿐이었다. 수애도 바보가 아니기에 그정도는 알아채고 있었다. 수애는 이미 주위에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인비에게 실망할 것도 없었다. 그저 나쁜남자라도 사로잡아보겠다는 오기만 있었다. 언제나처럼 자신에게 완벽하게 빠지게끔 만들고, 수정구슬의 빛이 약해진다고 느낄 때면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미움받지 않게 헤어졌다. 이런 스킬에는 수애만한 전문가가 없었기에 전 남자친구들 중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추기오라고합니다.
- 수애에요. 강수애.

소개팅장소로 유명한 카페에서 둘이 인사를 하고 앉는다. 인비는 기오가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기에 둘만 남게 된 것이다. 수애만큼이나 기오의 외모도 빼어났기에 주위의 질투어린 시선도 느껴진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갔고, 자리를 옮겨 칵테일을 한 잔씩 마신 뒤 헤어졌다. 수애가 집에 오자마자 한 일은 언제나처럼 수정구슬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보통 소개팅을 마치고 돌아오면 수정구슬이 강한 생기를 띄며 빛나곤 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수애를 만나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수정구슬의 빛은 아침과 큰 차이가 없었다. 기분탓인지 오히려 약해진 것 같기도 하다.

- 지이이잉

기오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글 오렌지노 / 그림 Hwai



다음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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