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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연재상자/어떤 존재들

어떤 존재들 3 - 오렌지노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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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산모의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 까지는 시간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조용해지면 밤이라고 유추하는 정도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어디에 표시할 수도 없기에 감으로 시간을 가늠하며 최대한 많은 기억을 떠올려 새로운 뇌에 되새김질을 해야했다. 
 
 아마도 느낌상 4~5개월이 지난 듯 하다. 그동안 지내온 중요한 경험에 대해선 상당부분 떠올렸고, 이제 학습을 통해 알게된 세상의 지식에 대해서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산모로 부터 받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점점 몸이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지만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괴로움이 더해가면서 산모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멈추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이번 생이 마감되었다. 어떤 빛도 보지 못한 채 다시 다른 산모의 몸 속으로 옮겨졌다. 이마저도 나에겐 익숙한 경험이다. 아마도 전염병이 돌았거나, 가난한 집안이 아니었나 싶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산모가 불쌍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처럼 다시 태어날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다시 힘겨운 기억 되새김질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어버리면 그 전에 어디까지 기억을 되새겼는지 정확히 기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된다. 다행히 새로운 산모는 영양공급을 좀 더 잘 해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뇌를 발전시켜간다.



 몸이 상당히 커진 것 같다. 이제 산모의 몸 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좀 더 많은 기억과 지식을 새겨놓고 싶지만 너무 늦게 세상의 빛을 보는 것도 산모와 나의 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태어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최대한 몸뚱아리를 움직여 자궁을 벗어나고 싶다는 신호를 한다. 산모의 비명이 들린다. 출산준비를 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했기에 어느정도 쉬었다가 다시 나가려는 액션을 취한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몸 가는대로 했겠지만, 지금은 이 과정을 모두 생각하면서 하게 되었다는 것은 스스로도 우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이번에는 진짜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세상으로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눈부신 빛과 함께 이번 생을 맞이하였다. 목청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힘차게 울기 시작한다. 이게 얼마만에 내어보는 목소리인가. 양수가 아닌 공기중에 노출된 몸에도 고통이 뒤따른다. 수차례 겪은 경험이지만, 탄생의 고통은 죽음의 고통을 떠올릴 정도로 강렬하다. 그래도 살아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어떤 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렌다. 이번에는 좀 더 긴 삶을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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