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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노상자

중고생 여러분도 논술강사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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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여러분도 논술강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논술때문에
말이 많았었는데
중고생 여러분도
논술공부를
틀에 맞게
아주 조금만 열심히 하면
논술강사를 할 수 있으니
논술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고생 여러분도
논술공부를
아래와 같이
틈틈이
3개월에서 6개월에 걸쳐 하면
누구나 논술강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머리에 지식이 들어오면
자신도
이제부터는 유식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나름대로 무엇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것은 선무당이 하는 것이니까
중고생 여러분은 선무당이 되지 말고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
아래의 모범논술을
각각
타자치기로
열 번에서 스무 번을 그냥 치면
곧바로
하늘이 열리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덧붙이면
논술을 위해서
책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지 말고
우리 나라 속담과 명심보감과
세계속담과 탈무드를
세 번에서 다섯 번을 읽고 나서는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도 되지만
책을 많이 읽으려고는 하지 말고
20-30권쯤을 읽고 나서
논술연습을
다섯 번에서 열 번을 해보면
중고생 여러분들도 모르는 사이에
중고생 여러분은
논술을 모범논술처럼 잘 하게 될 것입니다.

중고생 여러분은
글쓴이가 하라는 대로 하려면
짧게는 3개월이고
길게는 6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는데
아무튼
3-6개월 뒤에는
중고생 여러분은 논술강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7. 1. 6.

1. 개미 (수험생이 예전에 논명대에 올린 것임)
2. 초등학교 영어교육 (수험생이 예전에 논명대에 올린 것임)
3.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 2000년에 어떤 책에서 본 것임)


1. 개미

영화 ‘개미’에는 하나하나의 존재는 보잘것없지만 떼로 뭉치면 어떤 적이라도 거뜬히 물리치는 거대한 개미군단의 얘기가 나온다. 개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천적으로 정해진 각자의 임무를 당연시하며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범한 한 일개미가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나아가 그 개미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집단에 반항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위기에 부딪힌다.

이 개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것과 작은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제시문 (1)은 큰 것의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큰 조직은 개미집단 내에 개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개인적 욕구를 묵살한다. 따라서 큰 조직에 속한 개인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인간의 수단화 현상은 개인에게 소외감과 무력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3)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인 ‘소집단’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큰 조직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관련되면서도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힘들다. 큰 조직으로 인한 개인의 정신적 혼란은 이러한 특성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대면접촉이 가능하며 우리가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 소집단의 등장이 필요하다. 또한 소집단은 거대조직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에 다양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4)에서는 큰 것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큰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지혜와 시간의 경우처럼 크면 클수록 좋은 것들도 있다.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여태까지의 논쟁과는 달리 (2)에서는 아예 큰 것과 작은 것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크기의 구분은 상대적인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여러 전자제품의 크기는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기능은 갈수록 극대화되고 있다. 따라서 대상을 크기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크기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해서 우리가 큰 것과 작은 것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엔 우리의 삶을 구속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체는 알 수 없는 큰 집단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에 속하는 소집단이나 우리 개인 등 ‘작은 것’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즉, (2)의 주장은 큰 것과 작은 것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1), (3), (4)와 같이 둘 사이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파악하는 것도 옳지 않다.

우리의 신체라는 큰 단위를 구성하는 세포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한 쪽이 존재해야 비로소 다른 쪽도 존재할 수 있다. 위의 개미의 경우에도 집단을 벗어남에 따라 집단 내에서 생활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위험들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개미의 일탈이 지속된다면 전체 개미집단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큰 것과 작은 것은 어느 한 쪽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크기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초등학교 영어교육

최근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점차 세계화, 개방화되어 가는 추세에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특히 경제 특구나 자유무역지구의 학생들에게는 교과의 수업도 영어로 진행되는 영어몰입 교육이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교육정책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의 공통 언어라 여겨지는 영어 구사 능력은 곧 한 개인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필수 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때문에 많은 학생들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떠나고 있으며,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효율성이 떨어지고, 외화유출이 심각해지자 영어를 생활화하는 교육의 방향이 제시된 것이다.

분명 영어를 텍스트 위주로 암기하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은 학생이 학습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을 때 효과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아직 우리말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국어 구사도 미숙한 학생들에게 제 2의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게 된다. 무조건 일찍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의 준비도를 고려한 양질의 언어 교육이 중요하다.

아울러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기 영어 교육은 외국에의 문화적 종속이나 무분별한 추종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아직 조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저학년의 경우 모국어를 바르게 익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언어는 한 개인의 사고와 가치관을 표현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영어 사용에 대한 압박감이 학생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와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초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독창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감성을 자극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실질적인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교육의 근본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언어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더욱 초등교육의 목적은 기초․기본 소양과 올바른 인성 함양에 주력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우수상)

○○고 최대혁

힘에 의한 진리왜곡을 풀 수 있는 열쇠

피타고라스가 직각 삼각형이 밑면의 제곱과 높이의 제곱의 합은 빗면의 제곱과 같다는 그의 정리를 발견했을 때 만약 빗면이 2일 경우에는 밑면과 높이는 무엇이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당시 수학계의 권위자였던 피타고라스에게 그러한 의문은 피타고라스의 권위를 실추시킬 수 있는 문제였으며 따라서 피타고라스는 그러한 의문은 제기하는 제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여 그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진리를 왜곡하려 했던 것이다.

제시문에 제시된 상황도 이러한 권위에 의존한 진리의 왜곡이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주인공 비비도는 바로 그러한 현실을 문제삼고 있으며 그 속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러한 모순된 현실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것들은 관계없이 이단이라 규정하여 자신들의 힘을 빌어 그러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춘 이단자들을 폭력과 억압이라는 강제적 수단으로 규제하는 사제들과 그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보존을 위해 쉽게 생각을 바꾸어 그들에게 장단을 맞추는 백성들을 비비도는 모두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인 태도는 오늘의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한 몸 세우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현대인들 그들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것에 반하면 그른 것이라는 규정할 뿐이다.

건설공사의 현장에서 감사원이 부실을 발견하고서도 권력과 연관된 지배층이 힘으로 그것을 무마하려하고 또 자신의 직업을 잃지 않기 위해 쉽게 그것에 동조하는 감사원도 현대 사회에서 힘의 의해 진리를 왜곡하는 한 사례라 볼 수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보수성과 무사안일주의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관료제 사회에서 더욱 흔한 현상이다.

이처럼 위선의 모습에 장단을 맞추고 그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기반유지를 위해 그것을 숨기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지배층의 개방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진리를 왜곡하는 일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사회를 퇴보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권력구조의 틀에서 벗어나 더 나은 이론이나 확실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창의력을 낳게 할 수 있는 기본자세가 될 것이다. 이러한개방자세는 학문하는 사람 그리고 정치가들에게 더욱 필요할 것이며 자신보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힘에 의해 자신의 의견을 쉽게 변경한다면 우리 사회는 힘에 의한 억지가 만연할 것이며 진리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에 대항하여 그 힘에도 굴하지 않고 지동설을 진리로 탄생시킨 갈릴레이의 자세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현대는 아직도 비비도가 살고 있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과 권력 또는 돈에 의해 쉽게 진리가 왜곡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진리라면 끝까지 그것을 관철할 수 있는 주체의식을 가져야 하며 또한 옳지 않은 일이라면 진리에 기꺼이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즉, 부끄럽지 않은 삶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삶만이 오늘날 힘에 의한 진리왜곡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가져온 곳 : 온고을 글터, 전주시립도서관, 2000년, 66~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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