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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노상자/리뷰 모음

추억의 게임, 아바타 채팅 게임 '유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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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온라인 게임에 빠졌었다.
남들 다 하는 스타 배틀넷도 아닌, 바람의 나라도 아닌, 어둠의 전설도 아닌, 유리도시였다.



유리도시를 제일 처음 알게된 것은, 한 게임잡지에 소개된 하이텔에서 접속할 수 있는 유리도시였다.
자신의 아바타를 머리를 바꿔달고 스프레이로 코디를 바꾸며 꾸밀 수 있는 특이한 게임이었다.
흥미가 있었지만, 유료게임이었기에 하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CJ가 인터넷에서 유리도시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근히 중독성이 있었고, 접속을 오래 할 수록 게임머니인 토큰을 많이 벌 수 있었던 지라 자주, 오래 접속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월드(서버)가 3개로 나눠지게 되었다.

에메랄드, 페리도트, 토파즈

에메랄드가 가장 많이 찾는 서버였고, 페리도트는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서버.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활동한 곳이 바로 토파즈였다.


 테마공원이라는 리젼에서... 저게 내 아바타이다.

내가 유리도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노머리'라는 머리가 있었기 때문.
유리도시의 머리들은 보통 에베루즈 캐릭터에서 많이 가져온 것이었는데, 지노는 노이슈의 남자 버전이었다.
내 닉네임도 지노이고, 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게임에 빠졌던 것이 자랑도 아니면서 이렇게 떠들 수 있는 것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친한 친구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5~10명정도는 근 10년간 연락을 이어왔고, 작년에도 같이 여행을 같이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행때 찍은 사진들...(모임 이름 : 배고파)



당시(2000년) 내 홈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배너를 사용했었다.


그리고 배너를 만들었던 원본 이미지...


이런 배너도 사용했었다.


지노머리가 잔뜩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코머리로 마무리....

게임 내에 회사도 있었는데, 티는아템이라는 회사와 친분이 있어 배너를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그림판으로 내 아바타에 색칠을 하여 정장을 만들기도 했었다.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만들기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때 참여했던 캡춰...


외국인 월드인 페리도트에서도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었는데,
그 중 스웨덴 아줌마 Iza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또 생각나는 외국인들은... Yota, landscape, Roxite 등...

페리도트에는 버그도 있었다.
아래와 같은 엽기적인....

페리도트때문에 친해진 donald... 초등학교 교사 된 것 축하!

개인의 아파트를 살 수도 있었는데, 아래는 내 아파트의 모습이다.
재미로, 엽기적인 머리로 바꾼 상태로 찍었던 사진이 남아있다.



이런 엽기적인 인테리어를 만든 적도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 걸린 내 블로그 이미지에 있는 내 캐릭터를 그려준 아하(지금은 화이)와, 많이 친하진 않았던 나라씨


그러던 중, CJ에서 수익성 문제로 인하여 서비스를 중단하게 된다.
모든 유리도시 시민들은 아쉬움을 넘어 분개하였고, 막판에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졌었다.
막판에 찍었던 사진들은 아이템을 많이 사서 집에 두고 찍었었다.





이건 포토샵질을 좀 했다.


고2 말에 유리도시 서비스가 중단된 덕분에, 고3때는 게임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고...)


그러던 중 대학생이 되어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유리도시 2002로 부활한다는 소식.
그동안 뿔뿔히 흩어졌던 유리도시 시민들이, 알음알음으로 대부분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유리도시 2002가 시작되었다.

유리도시에는 유저가 운영의 일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 중, 질서를 위해 '지킴이'가 존재하였는데, 경찰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당시 팀 단위로 지킴이를 모집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뜻이 맞는 사람끼리 뭉쳐 만든 팀에 합류하여 지킴이 선거에 나섰다.

당시 이소의 의견으로, 우리는 '다림'이라는 팀명으로 짓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당시 유행한 영화 포스터를 합성하여 홍보 포스터를 만들었다.


나의 음악적 감각(?)을 활용하여 로고송까지 만들었다.


이 다림송은 후에 '배고파송'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결국 우리 팀이 지킴이로 선출이 되었고, 게임 내 분쟁 등을 해결하는 일을 맡았다.
중재는 정말 어렵다... 어쩔 땐, 양 측을 만족스럽게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였지만,
흥분한 유저들을 조금만 기분 상하게 해도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었다.



그렇게 2002도 멀어져갔다....

그리고! 내가 전역한 후, 2006년에 유리도시가 다시 부활했다.
당시 유리도시 개발자 중 한 명이, 사비를 들여 서버를 연 것이다.
유리도시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게 된 것.

신기하게도 10년 전부터 친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결성된 것이 바로 배고파... (다들 맛있는 것... 아니 먹을것을 좋아한다.....)
여차저차 내가 2대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오고 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모두 연락이 이어지고 간간히 모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은 http://cafe.naver.com/glasscity 에서 유리도시가 살아있긴 하지만, 접속 안 한지 오래.
2006년에 다시 모이고 나서 오프라인 위주로 변한것 때문이다.

문득 신기한 인연을 추억하며, 유리도시의 회상을 마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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